수혈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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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이 모자라는 환자에게 혈액을 주입해 주는 치료 방법

피를 이용한 치료방법

  • 옛날 로마시대의 귀족들은 젊고 씩씩한 검투사의 피를 마시면 회춘한다고 믿고 피를 마셨고, 성서의 구약시대에도 피를 많이 마신 것으로 추측
  • 얼마나 많이들 피를 먹었는지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구약성서의 여러 곳에 나타남
  • ‘나쁜 피’를 뽑아내면 뭔가 몹쓸 병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피를 뽑아 내는 치료를 하기도 함
  • 피를 뽑아내는 치료방법은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용
  • 이집트의 파라오가 병(elephantiasis)을 고치기 위해 피로 목욕을 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개의 피를 마심으로써 공수병을 치료 하기도 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간질과 괴혈병의 치료방법으로 물개 또는 고래의 피를 마셨다고 하며 한 전설에 의하면 15세기 후반에 만성 신장 질환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던 교황을 치료하기 위하여 세명의 소년들의 피를 빼서 교황에게 넣어주는 치료를 시도하였으나 효과는 보지 못했다고 함

최초의 수혈과 금지령

옛날 서양사람들이 수혈하고 있는 그림

  • 피를 혈관 내로 주입하는 방법, 즉 수혈이라는 것은 1628년 William Harvey에 의해 혈액 이 우리 몸 속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에 대해 규명된 이후 시도되었음.
  • 최초의 수혈은 1665년 2월에 Richard Lower라는 영국 의사가 옥스퍼드대학에서 두 마리의 개를 가지고 시행한 실험에서 한쪽 개의 목에 있는 동맥을 다른 개의 정맥에 연결한 후 혈액이 주입되게 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수혈 실험이었음.

양의 경동맥과 사람의 정맥을 연결하여 수혈하고 있는 장면

  • 사람에게 시행한 최초의 수혈은 루이 14세의 주치의인 Jean Denis라는 의사가 1667년 6월에 원인 모를 열병을 앓고 있었던 15세 소년을 대상으로 어린 양의 혈액을 수혈한 것이 인류 최초의 수혈이었음. 그러나, 수혈치료를 받던 Denis의 환자가 수혈장치 고장으로 사망한 후 파리의 의사회는 수혈 금지령을 공표했고, 카톨릭 교황이 수혈금지 칙령을 내림.

James Blundell과 수혈의 재탄생

  •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인 James Blundell(1790~1877)은 1818년 12월에 위암으로 거의 죽어가던 환자에게 사람의 혈액 약 400cc를 수혈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이것은 인류 최초로 사람의 혈액을 사용한 수혈이었다고 인정받고 있음
  • Blundell의 영향으로 여러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 후 출혈 환자에게 수혈 치료를 감행하였으나 19세기 중엽에는 과연 이런 수혈방법이 환자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기 시작
  • 많은 의사들이 이런 수혈방법이 위험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수혈 후 회복되었다고 생각한 환자들도 그것이 정말로 수혈에 의한 효과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48예의 수혈 결과를 분석한 당시의 한 연구에 의하면 무려 18예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
  • 혈액형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수에서 용혈성 수혈부작용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 또한 직접수혈이라는 시술을 행하려면 혈액제공자의 동맥과 수혈 받을 환자의 정맥을 잇는 어려운 전처치를 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도 여러 합병증이 초래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피가 응고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들

  • 피는 몸 밖으로 나오면 응고 되며, 응고된 피를 수혈할 수 없으므로 할 수 없이 응고되기 전에 빨리 수혈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혈액제공자의 동맥과 수혈 받을 환자의 정맥을 연결
  • Sodium bicarbonate 또는 sodium phosphate 등과 섞어 섬유소원을 제거하여 항응고 효과를 보려 했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는 못함
  • 1914년에 와서야 sodium citrate가 항응고 작용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나 이때도 항응고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sodium citrate를 피와 섞어 주어야 했기 때문에 혈액이 희석될 수 밖에 없었음
  • Rous와 Tumer는 salt, isocitrate 및 glucose를 섞어 항응고보존제를 만들었고 이것은 실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수혈에 이용됨
  • 제대로 된 항응고보존제는 1943년에 Loutit와 Molison에 의해 citric acid, sodium citrate 및 dextrose를 혼합하여 혈액 희석 효과를 줄인 ACD(acid·citrate·dextrose)를 만들어 혈액이 응고되지 않으면서 21일간이나 보존할 수 있게 하는데 성공
  • 이후 1957년에는 CPD (citrate·phosphate·dextrose)가 개발되었고 최근에는 여기에 adenin을 첨가한 CPDA·1을 항응고보존제로 사용하게 되어 적혈구체제를 무려 35일간이나 보존할 수 있게 됨

Karl Landsteiner와 혈액형의 발견

  • Karl Landsteiner는 1868년에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비엔나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이후 병리학자가 되어 면역의 기전 및 항체의 성상 등에 대한 많은 연구업적을 남김
  • ABO 혈액형의 발견은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이며 이로 인해 그는 1930년에 노벨상을 받음
  • 동물의 혈액을 사람에게 수혈하였을 때 수혈된 동물의 적혈구가 엉키고 용혈되었다고 보고한 1875년 Landois의 실험결과를 주목하였던 그는 사람의 혈액을 다른 사람에게 수혈했을 때도 적혈구가 용혈되고 이로 인해 쇼크, 황달 및 헤모글로빈뇨증이 초래됨을 알게 됨
  • 1900년에 Landsteiner는 서로 다른 세가지의 동종응집소(isoagglutinin)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규명하였고 이듬해에는 마침내 혈액형을 A형, B형, 및 C형(후에 O형으로 이름을 고침) 세가지로 분류
  • 이후 네번째 혈액형인 AB형은 1902년에 그의 제자인 DeCastello와 Sturli에 의해 발견
  • 1907년 뉴욕의 저명한 병리학자였던 Richard Well 밑에서 당시 인턴으로 일하던 Ottenberg는 Landsteiner의 발견을 중시하였고 마침내 수혈 하기 전에 환자와 공혈자의 혈액형을 검사하였던 최초의 사람이 되었고, Ottenberg는 또한 수혈 전에 수혈적합검사(교차시험)를 최초로 시행한 사람으로 기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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